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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ENT 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 정말 멋진 웰메이드 대형 창작뮤지컬! 그렇지만 깊이 감정이입하기에는...

발행일 : 2019-04-03 14:59:15

이터널저니, 영화의전당 주최, 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작, 유병은 작/연출 창작뮤지컬 <1976 할란카운티>가 4월 2일부터 5월 5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이렇게 정말 멋진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을, 뮤지컬 연출과 작곡에 처음 도전한 스태프들이 만들었다는 점은 매우 놀랍다.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그렇지만 깊이 감정이입하기에는 정서적으로 불편한 점이 존재한다. 뮤지컬 내적 정서가 아닌 외적 정서의 영향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1976 할란카운티’ 공연사진. 사진=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공 <‘1976 할란카운티’ 공연사진. 사진=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공>

◇ 웰메이드 대형 창작뮤지컬! 뮤지컬을 처음 연출한 유병은 연출가 + 뮤지컬 작곡가로 첫 도전한 강진명 음악감독
 
<1976 할란카운티>는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최우수작품상에 빛나는 바바라 코플의 다이렉트 시네마 ‘할란카운티 USA’를 모티브로 한, 격정적 실화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할란카운티 USA’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의 노래에도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6 할란카운티>는 부산문화재단 청년연출가 제작지원사업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유병은 연출가는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뮤지컬을 연출했고, 강진명 음악감독은 뮤지컬 작곡가로 첫 도전한 작품이다.
 
첫 도전에 이런 멋진 뮤지컬을 만들어냈다는 점은 큰 의미를 가진다. 수준급 라이징 스타 제작진의 탄생으로 계속 좋은 작품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과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 뮤지컬 또한 더욱 활성화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게 된다는 점이다.
 
뮤지컬 속 힘든 내용을 노래와 춤으로 완충하고 승화한 점은 인상적인데, 등장인물의 캐릭터만 봐도 공연에 대한 호기심과 분위기가 느껴진다는 것은 <1976 할란카운티>를 다양한 관객들이 볼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1976 할란카운티’ 공연사진. 사진=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공 <‘1976 할란카운티’ 공연사진. 사진=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공>

자신을 키워준 흑인 라일리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다니엘(김다현, 서승원, 조상웅 분)과 고아가 된 다니엘을 자식처럼 키운 라일리(김륜호, 이준용 분)의 우정은 인상적인데 두 사람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항상 관심을 가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광산노조 위원장 모리슨(엄준식 분)과 그의 딸이자 유일한 여성 광부로 탄폐증을 앓고 있는 엘레나(이지숙, 이하경 분), 광산노조 부위원장 존(김형균, 윤석원 분)과 그의 아내 나탈리(류수화, 구옥분 분)와 광산노조원(김율, 박삼섭 분) 등 같은 일터에 하는 사람들의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다는 점은 미묘한 갈등을 살리는데 도움이 된다.
 
자신이 믿는 정의를 위해 회사 편에 서서 싸우는 배질(이경수, 왕시명 분), 광산회사 법률고문이자 사리사욕을 채우는 패터슨(강성진, 김상현 분), 광산회사 사장이자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하는 토니보일(원종환 분)에 대해 관객이 충분히 미워할 수 있게 만들면서도, 그렇다고 너무 무서워 대항할 수도 없는 캐릭터로 폭주하지는 않았다는 점 또한 눈에 띈다.
 
동생을 위해 돈이 되는 일은 뭐든 하는 올리버(선일 분)와 그의 동생이자 광산에서 일하다 다리를 다친 엠버(김민솔, 조혜인 분)는 <1976 할란카운티>에서 대결축이 아닌 변수가 되는 인물들인데, 상황에 따라 다른 태도와 결심을 하는 것을 관객이 받아들일 수 있게 정서적인 디테일을 충족한다는 점 또한 뮤지컬에 처음 도전한 주요 스태프들의 실력이라는 게 놀랍게 느껴진다.

‘1976 할란카운티’ 공연사진. 사진=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공 <‘1976 할란카운티’ 공연사진. 사진=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공>

◇ 뮤지컬 속 배신코드가 주된 정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인물이, 한두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다
 
<1976 할란카운티>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누구나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흔들리는 사람들과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신념과 기준을 지키는 사람들도 많다는 점은 현재 우리나라 관객들의 정서를 고려할 때 무척 긍정적이다.
 
대부분 흔들리고 한두 명이 중심을 잡고 있는 게 아니라, 다니엘, 라일리, 엘레나, 존, 모리슨 등 다섯 명은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고 있다. 뮤지컬 속 배신코드가 주된 정서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인물이 한두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라는 점은, 우리나라 관객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게 만드는 중요한 배려라고 생각된다.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정말 똑똑한 선택이다.
 
<1976 할란카운티> 제1부는 특히 시련이 연속돼 관객의 마음 또한 침울하게 만들 수 있다. 제2부에서는 크기로 따지면 더 큰 시련이 닥치지만 훨씬 역동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관객 또한 더 큰 희망을 가지게 될 수 있다.
 
제2부에서 존을 살리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희생하게 만드는 나탈리의 선택은 관객을 마음 아프게 만들지만, 되돌리겠다는 용기를 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번 잘못된 선택을 한 후,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계속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현실에서도 꽤 많은데 나탈리는 그런 많은 관객들, 그런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많은 관객들에게 되돌리겠다는 용기를 내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지 보여준다.
 
<1976 할란카운티>는 오해가 얼마나 무서운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지속적인 편견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른 순간적인 오해도 누군가에게는 얼마나 큰 위험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1976 할란카운티’ 공연사진. 사진=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공 <‘1976 할란카운티’ 공연사진. 사진=이터널저니, 예술은공유다 제공>

◇ 멋지게 보이려고 하기보다는 진정성 있게 보이도록 표현한 서승원과 이하경
 
서울 초연 첫공연에 출연한 서승원과 이하경은 너무 멋지게 보이려고 하기보다는 진정성 있게 보이도록 표현했다. 본인이 맡은 역할의 등장인물이 위급하거나 불안한 장면에서는 대사를 할 때와 뮤지컬 넘버를 부를 때 모두 너무 여유를 부리기보다는 떨리는 목소리로 진정성 있게 표현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서승원과 이하경 모두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 공연했었던 배우였는데, 등장인물의 감정을 완전히 파악하고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성과 개연성 있는 표현이 더욱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 감동적이고 공감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깊이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경우 불편해질 수 있는 이유는?
 
서울 초연 프리뷰 공연 첫날에 이렇게 완성도 높은 무대를 만들었다는 점은 앞으로의 서울 공연에 대한 기대를 더욱 높이고 있다. <1976 할란카운티>는 감동적이고 공감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깊이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경우 불편해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1976 할란카운티>에 나오는 광산노동자들 중 많은 사람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추구하면서도 흑인을 무시하는 이중적 잣대를 가지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에 초점을 두고 행동했다고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렇다면 백인 광산노동자들이 아닌 흑인 라일리에 감정이입하면 마음이 더 편해질 수 있을까? 뮤지컬 내적 요인이 아닌 외적 요인에 의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투쟁으로 인해 흑인은 지위가 격상됐고, 미국에서는 백인 다음의 기득권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소수민족은 흑인보다 훨씬 못 한 취급을 받는데, 현재도 소수민족은 백인뿐만 아니라 흑인에게도 인종차별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영화나 뮤지컬에서도 소수민족을 보호하는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우리가 감정이입하면서도 완벽하게 감정이입하지 못하는 이유일 수도 있고, 뮤지컬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대놓고 흥분하기 불편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1976 할란카운티>에서는 광부는 갱도에 들어가기 전에는 다른 모습이지만 나올 때는 같은 모습이기 때문에 편견 없이 공평하다고 말한다. 머리로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되긴 하지만 진정성 있게 막 와닿지 않는다. ‘백인들의 권리인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가?’ 아니면 ‘이제는 백인과 흑인의 권리인가?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가?’에 대해 뮤지컬을 보면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천상욱 기자 (lovelich9@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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